채권단이 신규 자금 투입을 결정한 배경이다.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 근대화의 길이 아니었다.성찰해야 할 역사적 이슈가 너무나 많다.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해답은 하나에 있지 않다.이들은 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보다는 일본을 모델로 해서 근대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조선 정부는 떠 넣어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그 누구도 변화의 성격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청의 몰락은 논란이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